농심몰

  전통적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실행하는 ‘자기주도 학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서 대치동에 사는 우등생을 세 남매가 다니는 학원의 총 수가 34개였다는 것이나, 얼마 전 본 드라마에서 엄마가 짜 준 계획대로 잘 따르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 등을 보면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자기주도적 학습을 한다는 전통적인 공식이 깨어진 듯하다. 그러나 SKY대학 교수님들이 ‘요즘 대학생들이 이전에 비해 학력수준이 떨어진다’, ‘스스로 뭔가를 계획하라고 하면 할 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직장에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시키는 것만 한다’는 불만을 들으면서, ‘부모가 한순간 시켜서 공부를 잘할 수는 있어도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실행하지 않으면 결국은 언젠가는 문제가 생기는 구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사진 1. 자기주도 식사를 하는 아이>

  아이들 먹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곳에서 왜 10여년 후에나 있을 자기주도 학습 이야기를 꺼냈을까? 영유아 시기 식사시간에 보이는 모습과 훗날의 학습 때 모이는 모습이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사시간에 아이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보일까 생각하겠지만, 식사시간동안 보이는 아이의 행동만을 가지고도 감정조절, 인지영역, 사회성 영역 등 다양한 영역을 알 수 있고, 부모의 양육방식까지도 평가가 가능하다. 

   아이의 식생활에 대한 연구에 참여한 한 영양사가 조카의 식사행동을 평가받고 싶어 10분정도 길이의 식사동영상을 가져왔다. 18개월의 예쁜 여자아기였고, 엄마가 식판에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여 열심히 먹이려는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었다. 식사 행동을 포함하여 아이를 평가함에 있어 알고 하는 것은 아이의 발달적 특징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학교 다니면서 국어, 수학, 영어만 중요한줄 알고 열심히 했지, 인간이 어떻게 발달하고 있는지 배운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면 학교에서 인간의 발달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 더 많은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이제라도 아이의 발달을 좀 살펴보자. 

  18개월 된 아이는 어떤 발달적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아래 발달표를 보면 18개월은 자기중심적이고 자율성을 키우는 시기라고 한다. 깜깜한 엄마 뱃속에 있던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눈앞에 보이는 타인을 인식하고, 자기 몸을 보면서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고, 자기를 돌보아주는 남과, 낯선 남을 구별해나가기 시작한다. 18개월 전후로 ‘자아’라는 것이 생기면서 ‘나는 나야! 나는 이것이 하고 싶어, 내가 직접 해보고 싶어’ 등의 발달적 특징이 나타난다. 

<표 1.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와 특징> 

  자아, 자율, 자기중심이라는 단어가 멋있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 이전에 말을 잘 듣던 아이가 ‘이것도 하겠다, 저것도 하겠다’고 주장을 하고, 안된다고 하면 고집을 부리기까지 하니 부모로서는 아이 돌보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지게 되는 시기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미운 세 살’ 이라는 말이 있다. 18개월 전후는 우리나라 나이로 보면 3살 정도이고, 말을 안 들어 힘들다 보니 아이가 미워지는 것이다. 나는 강의 할 때 미운 세 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에게 물어본다. ‘아이가 발달이 늦어져 18개월이 되어도 자기주장이 없는 것이 좋겠는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발달이 되어 자기주장이 생기는 것이 좋은지?’ 그러면 당연히 정상적으로 ‘자기주장을 해야 한다’고 답을 한다. 그러면 앞으로 아이가 주장이 생겨 말을 안 듣기 시작하면 밉다고 하지 말고, ‘내 아이가 자아가 생겼구나’라고 말하고 박수를 쳐주라고 이야기 해준다. 축복을 해주어야할 상황에 밉다고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빨리 깨우쳐야 나와 내 아이가 행복해 질 수 있다.

  식사를 하는 비디오 속의 아이도 자아가 생겨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숟가락질을 직접하여 끈끈한 밥을 뜨느라 너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에게는 끈끈한 밥 떠먹기가 자기가 성취해야할 대단한 미션이다. 내 눈에는 힘든 일을 열심히 해내려는 아이가 너무 예쁘게 보였고, 인지적으로도 똑똑한 아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엄마에게는 아이의 발달적 특징은 보이지 않고, 엄마가 원하는 음식을 먹지 않는 아이만 보였다. 엄마는 아이에게 주려고 밥, 미역국, 고기동그랑땡, 계란장조림, 오이를 차려 놓았다. 엄마는 아이가 이 음식을 골고루 먹기를 원했지만, 아이가 맨밥 먹는 데만 집중하니 엄마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엄마는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저를 뺏어 동그랑땡, 장조림을 입에 넣어주었고, 아이가 엄마가 준 음식을 자꾸 뱉어내자 급이야 밥을 미역국에 말아 밥을 계속 먹여주었다. 아이가 미역국에 말은 밥을 다 받아먹고 나서 식사는 끝이 났다. 엄마주도 식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림 1. 부모는 어떻게 하면 될까>

  많은 집에서 식사시간에 벌어지는 광경이어서인지 대부분의 부모들은 미역국을 마는 순간에 큰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두 아들을 키운 인생선배로서, 전문가로서 나는 웃고만 넘기기에는 안타까움이 많은 장면이다. 내 눈에는 아이에게 영양가 있는 것을 먹이기 위해 준비한 엄마의 정성스러운 밥상이 보였고,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의 사람이 보였고,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미역국과 밥만 먹은 모습이 보였다. 또한 자율적으로 계획한 끈끈한 밥 먹기 미션을 끝내지 못하고, 엄마의 주도에 의지가 꺾여 수동적으로 되는 아이가 보였다. 엄마 입장에서나 아이 입장에서나 성공적인 식사시간은 아닌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식사시간이 되었을까? 엄마는 정성스럽게 차려준 식사를 먹는 아이를 지켜보며 어려운 미션을 성공했다 싶었을 때 격려하고 박수만 치면 된다. 비록 밥만 먹고 있는 것 같아도 맨밥 먹기 성공한 것 자체만을 평가하여 성공하면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격려를 받은 아이는 밥 먹기에 성공한 후 동그랑땡, 오이, 장조림을 단계적으로 먹게 되어 있다. 이것이 이 시기 발달적 특징이다. 엄마에게 격려를 받은 아이는 주도성이 발달하고, 적극적으로 다음을 시도하고, 숟가락질 하면서 연습한 근육운동과 시행착오로 뇌는 많은 자극을 받아 뇌 발달이 촉진된다. 부모들은 명심해야 한다. ‘영유아기는 놀이, 학습, 식사시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아이가 하는 모든 활동이 학습이고, 놀이이다.’ 

  심리사회적으로 저명한 에릭슨이 정리한 발달특징을 보면 영유아기는 신뢰감, 자율성, 주도성을 키우는 시기이고, 그래서 부모는 발달단계에 맞게 신뢰감, 자율성, 주도성을 키워주는데 집중을 해야 한다. 매일 부모와 마주하는 식사시간은 영양공급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율성, 주도성을 키울 수 있는 종합적인 시간이다. 엄마가 먹는 것을 정해주고, 먹어야 하는 양도 정해주고, 안 먹으면 먹여주는 사이 아이는 수동적이 되어가고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성취감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영유아기 식사시간에 보인 모습은 훗날 다르지만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부모가 정해준 학원을 가고, 선생님이 정해준 진도대로 공부하고, 부모가 정해준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을 진학한다. 언제까지 부모주도 인생을 살게 할 것인가?

  얼마 전 히트 친 입시관련 드라마를 보면서 누군가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요즘 부모들은 SKY가는 방법을 잘 하는데 아이가 뭘 원하는지는 잘 모른다고... 부모가 된다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내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행복해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훈련. 나와 내 아이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이제 나부터 돌아보자.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훈련을 하고 있는지...

* 출처 :  누들푸들(http://www.noodlefoodle.com) (주)뉴트리아이 대표 한영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