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몰

  오사카는 에도 시대에 ‘천하의 부엌’(天下の台所)으로 불렸다. 상인들의 도시이자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었고 전국 번들이 오사카에 창고 등을 마련하면서 생활물자의 상당수가 일단 생산지보다 오사카로 모아져 다시 전국 소비지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사카는 물산이 풍부해 서민들의 음식인 라멘의 발달이 더뎠다. 2010년대 중반까지 오사카부의 라멘 가게는 인구 10만명 당 10.6점으로 효고현, 나라현과 함께 전국 최저 레벨이었다. 저렴한 우동과 오코노미야키나 타코야키 같이 밀가루 음식을 뜻하는 가루몽(粉もん) 문화가 널리 퍼져 있기에 라멘의 설 자리가 없던 것이다. 그런데 오사카시내에서는 2010년 정도부터 신규 라멘 집들이 늘어 10년에 60% 가까이 증가했다. 한편 오사카는 기쓰네우동 발상지로 여겨져 우동이 중심인 가게는 553개가 있지만 10년 전보다 약 7% 줄었다. (www.asahi.com - 2020/12/12)  

  오사카의 라멘은 기존 라멘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무장한 채 혁신의 길을 걷고 있다.  

<사진 1. ‘진류이 미나 멘루이’(人類みな麺類)의 외관 및 라멘>

 현재 오사카 라멘 인기의 중심에는 ‘진류이 미나 멘루이’(人類みな麺類, 인류 모두 면류)가 있다. 2012년 오픈한 이래 ‘통 밀이 들어간 수제면'과 '극히 두꺼운 차슈', '두툼한 멘마'가 인기를 끌며 언제나 긴 줄이 서는 맛집으로 등극했다. 식당은 두개의 가게 바로 근처에 있고 실내도 매우 넓어 긴 줄이 서도 대기 시간이 20분을 넘지 않는다. 라멘 주문은 라멘을 고르고 세가지 챠슈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형식이다. 이 집은 챠슈로 유명해졌다. 찜기로 쪄낸 오겹살의 챠슈는 두껍지만 부드럽고 매우 짜다. 면은 부드러움 보다는 쫄깃함에 중심을 두고 있다. 진류이 미나 멘루이를 운영하는 운치(UNCHI)사는 진류이 미나 멘루이 이외에도 ‘세카이이치히마나 라멘야’ (世界一暇なラーメン屋, 세계에서 가장 한가한 라면집), 탄탄멘노 오키테오 야부루 모노(担担麺の掟を破る者, 탄탄멘의 규칙을 어기는 자)같은 직관적이며 서술적인 네이밍으로 라멘의 영역을 유머스럽게 넓혀가고 있다.  

<사진 2. 멘니 히카리오 벳테에(麺に光を別邸)의 외관 및 라멘>

 멘니 히카리오 벳테에(麺に光を別邸, 면발에 빛을 별저)는 오사카 전통의 닭육수를 기반으로 여러가지 닭과 간장을 블렌딩한 면으로 2021년 7월에 오픈한 신생 맛집이지만 엄청난 인기와 한그릇에 파인다이닝 같은 수준 높은 라멘 한 그릇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집이다. 나무로 된 세련된 외관과 정갈한 실내가 편안하다. 주방이 넓은 편인데 4가지 라멘을 만들기 때문이다  

 소유노 히카리(醤油の光)、카이노히카리(貝の光)、다시노히카리(出汁の光)가 가장 유명하다. 이 집의 간판인 간장 라멘인 소유노 히카리는 염도는 1.3으로 일본 라멘치고는 약한 편이다. 하지만 깊은 간장의 풍미가 강한 인상을 준다. 간장은 낮은 염도의 국물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풍미를 국물에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은 오리의 본향 교토의 오리에 오쿠히사지샤모(奥久慈しゃも)의 닭뼈와 마루케에(丸鷄)의 여러 부위를 시간차를 두고 저온에 우려낸 육수에 강한 감칠맛과 단맛이 살짝만 도는 간장을 넣어 완성한다. 간장은 일본 간장의 발상지 유아사소유(湯浅醤油)를 대표하는 노포 카쿠초오(角長)를 필두로 4가지 간장을 블렌딩한 것이다. 요즘 일본 라멘은 육수를 다양한 블렌딩을 하는 것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블렌딩은 하나의 재료가 지닌 단점을 보완하고 맛을 풍성하게 하면서 먹을 때마다 다른 맛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면도 정교한데 오사카의 또다른 라멘 명가 나카가와와즈(NAKAGAWAわず)의 면을 사용한다. 라멘을 먹는 내내 편안하고 깊은 맛에 감탄이 나오는 집이다. 

<사진 3. 마루데산카쿠(鯛白湯らーめん)의 외관 및 라멘>

 마루데산카쿠(鯛白湯らーめん)는 도미 백탕 라멘(鯛白湯らーめん)로 유명한 집이다. 타이토우 라멘 토로리(鯛白湯らーめんとろり)는 진한 국물이란 말처럼 크림 소스 같은 국물에 겉을 태운 도미의 절묘한 조화가 일품이다. 자연산 도미와 물을 8시간 끓여낸 육수에 각종 조개류를 넣은 국물이다. 생선을 싫어하는 사람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타이칭탕 토로리(鯛清湯さらり) 맑은 도미 국물인데 도미의 은근한 향에서 바다의 내음이 난다.  

 일본의 라멘은 돼지와 닭 육수를 기본으로 하지만 최근에서 해산물을 이용한 육수도 많이 사용된다. 오사카의 신생 라멘 집은 기존의 맛과 형식을 파괴하면서도 수준이 높다. 세계 3대 요리 학원인 츠지요리학교 덕에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이란 이름처럼 수준이 높고 혁신적이다.  

🔊 출처 : 누들푸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