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몰

<사진 1. 활선어 위판장을 개조한 해녀의 부엌>

겨울 추위가 쉬이 떠나지 못하는 3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져 너나할 것 없이 우울감을 호소한다. 언론에서는 주말 지방 관광지 대부분 서울을 벗어나고 파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는 보도에 왠지 나까지 보태면 안될 것 같아 지난 1년을 오롯이 회사와 집콕으로 견뎌왔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껴진 어느 날, 업무를 핑계 삼아 주말을 피해 제주도로 향했다. 봄기운 가득한 제주의 맛이 그리웠다. 

제주로 행선지를 정한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해녀의 부엌’ 예약이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해녀의 부엌은 20여 년 전 생선을 경매하는 활선어 위판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해 해녀들의 삶을 극화한 연극과 해녀들이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밥상을 차려내는 곳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청년 예술인과 종달어촌계 등이 의기투합해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재탄생 시켰다. 매일 영업하는 일반 식당과 달리 이곳은 금, 토, 일 3일간만 운영해 사전예약을 해야하지만 매 공연마다 30명 정원이 꽉 찰 만큼 인기다. 

연극은 종달리의 최고령 현직 해녀인 89세 권영희 해녀의 삶을 담았다. 남편을 바다에 잃고, 믿고 따랐던 해녀 동생도 바다가 데려갔지만 그래도 어린 자식을 위해 억척스럽게 온 몸을 바다에 던지며 살아온 권영희 해녀의 인생을 다룬 극의 말미에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져 온다. 

제주 해녀의 주수입원인 100% 자연산 뿔소라 

<사진 2. (위) 강인화 해녀가 제주 바다에서 물질한 뿔소라에 대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펼치고 있다.

(아래 왼쪽) 관객들에게 뿔소라의 암놈과 수놈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 오른쪽) 뿔소라 껍질로 만든 수저받침>

공연에 이어 펼쳐지는 해산물 이야기는 강인화 해녀가 직접 잡아온 뿔소라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현재 제주 해녀들이 가장 많이 채취하는 뿔소라는 현무암 구멍 속에 뾰족한 뿔을 끼워 넣어 제주도의 거센 파도를 버텨내고 자라 ‘도깨비소라’라고도 부르며 액운을 쫓는 상징으로 여긴다고. 험한 바다에서 물질을 해 가족을 먹이고 집안을 일으킨 제주 해녀의 강인한 생명력과 제주의 거친 파도를 이겨낸 100% 자연산 뿔소라의 강인한 생명력은 공통점이다. 최근 자연산 전복은 개체 수가 줄어 채취가 어렵고 가격은 비싼데 반해 현재 제주 해녀들이 채취하는 뿔소라는 주로 일본 수출에만 의존해 국내 소비가 미미하다고 한다. 이에 해녀의 숨결이 가득한 뿔소라의 가치를 알려 판로를 확장하고, 세계인의 식탁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의 식재료로 만든 신선하고 풍성한 식탁

<사진 3. 뿔소라 요리를 하고 있는 해녀(왼쪽)와 뿔소라미역국, 전복물회(오른쪽)>

<사진 4. (왼쪽부터) 뿔소라 꼬치, 군소닭가슴살 무침, 성목무침>

해녀가 들려주는 해산물 이야기를 듣고 나면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구성한 정찬이 이어진다. 연극과 해산물이야기를 들은 후에 음식을 접하니 더욱 감동적이다. 가장 먼저 톳과 흑임자를 넣어 만든 고소한 죽이 나오고 직접 채취한 뿔소라로 회, 꼬지 등 요리와 낚시로 잡은 제주 은갈치에 구좌 무와 감자를 넣고 푹 익힌 조림, 예약을 할 때 미리 선택한 뿔소라미역국과 전복물회가 제공된다. 밥과 찬은 뷔페로 차려낸다. 톳 밥에 군소와 닭가슴살을 맛있게 무쳐낸 군소 무침, 성목무침 등 각종 찬 그리고 돔베고기와 향토떡인 상외떡 등 제주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가득해 제주 바다가 통째로 다가온 것 같다. 

<사진 5. 제주 바다에서 물질한 해산물과 제주의 식재료로 차린 뷔페>

“우리한테 바다가 뭐냐고? 뭐긴, 우리 부엌이지”

<사진 6. 권영희 해녀가 젊었을 때 입고 물질을 했던 해녀복>

종달리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과 제주의 신선한 채소가 가득한 정찬을 즐기고 나면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해 온 권영희 해녀의 노랫가락과 본격적인 해녀 이야기가 펼쳐진다. 10살 때부터 물질 연습을 해 15살에는 멀리 통영, 울산, 일본 등으로 원정 물질을 다녔고, 만삭의 몸으로도 바다에 들어가야만 했던 이야기를 듣노라면 해녀의 일생의 고단함이 절로 느껴진다. 또 옛날에는 얇은 천으로 만든 해녀 옷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면 너무 추워서 30분정도 물질을 한 후 밖으로 나와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종일 일해도 2~3시간 밖에 물질을 할 수 없었는데, 요즘은 잠수복이 있어 오랜 시간 물질을 해도 춥지 않고,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할 수 있어 정말 편해진 세상이라며 과거의 고단함을 비유하신다. 무엇보다 옛날에는 물질을 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먼 길을 걸어 집으로 갔지만 지금은 남편들이 자가용으로 모셔가고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세상이라는 말에는 모두들 웃음이 빵 터졌다. 

15~20년 후에는 이 땅에 해녀가 사라질지도

제주 해녀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도 등재됐다. 현재 가장 어린 해녀의 나이가 50대라고 하니 어쩌면 20년쯤 후에는 이 땅에 해녀가 사라지고 이렇게 연극으로만 전해질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공연이 더욱 먹먹하게 여운으로 남았다. 

노란 유채꽃이 환하게 반기고, 곧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벚꽃이 수줍게 손짓하며 어서 오라던 제주. 기다리다 지쳐서 뚝뚝 떨어진 빨간 동백꽃을 보면서 더 늦지 않게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출처 :  누들푸들 외식산업 종합경영정보지 [월간식당] 및 [식품외식경제신문] 육주희 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