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몰

<사진 1. 찹쌀떡>

  추운 겨울 책상에 웅크려 공부를 하다 보면 갑자기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 "찹쌀 떡! 메밀묵"  

  귀마개를 쓴 찹쌀떡 장사가 어깨에 멘 큰 박스 속에는 찹쌀떡이 콩가루에 덥혀 나무 꼬챙이에 끼워져 있다. 출출하던 밤에 먹으면 한결 공부가 잘 될 것만 같았다. 60여 년 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던 모습이다.  

  찹쌀떡은 겉 부분이 끈적끈적하여 콩가루를 입혀 먹는 것이 입안에서 잘 들러붙지 않고 조직감이 좋으며 취급하기도 용이하다. 찹쌀떡끼리 서로 달라붙지 않을뿐더러 콩가루의 구수한 맛도 담을 수 있다. 아마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예전에 먹던 찹쌀떡의 추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찹쌀떡은 차질고 말랑말랑하면서 끈적끈적한 물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포도당이 알파 1-6결합으로 구성된 아밀로펙틴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찹쌀떡의 끈적끈적한 텍스쳐(texture)로 인해 입시철이면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의 교문에 찹쌀떡을 덕지덕지 붙이고 입시생들의 간절한 소망을 빌어보기도 하였다.  

  인절미의 경우 끈적끈적한 텍스쳐의 문제로 먹기 불편한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콩가루를 입힌 것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콩가루나 팥을 사용하여 끈적끈적하여 서로 붙어 버리는 성질을 극복할 수 잇는 방법으로 찹쌀떡을 만들었던 것이다.  

  찹쌀이든 멥쌀이든 밥을 짓게 되면 가열에 의해 녹말분자 내부로 물분자가 스며들어 팽창이 일어나면서 소화효소들의 공격으로 빠르게 분해되는데, 이 과정에서 단맛을 지닌 것들이 생성되어 밥이 맛있게 느껴지게 된다. 반대로 찬밥이 되는 과정에서는 녹말분자 사이의 물분자가 떨어져 나가 녹말분자끼리 결합하게 되어 소화효소들의 공격도 쉽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단맛을 지닌 성분들이 생성되지 않아 밥이 맛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찹쌀떡을 구성하는 아밀로펙틴은 알파 1-6결합의 가지를 많이 가지고 있어 가지 형태의 결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밀로스와 달리 노화가 천천히 일어난다. 보통 노화가 일어나면 수분이 증발되면서 딱딱해지는데 알파 1-6결합과 같은 가지형태의 결합은 수분 증발을 상대적으로 억제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분자량이 상대적으로 매우 큰 아밀로펙틴은 분자의 움직임이 느리면서 노화가 천천히 일어난다. 차질고 끈적끈적한 성질은 가공 면에서는 어려움이 많지만, 콩가루나 삶은 팥으로 찹쌀떡 표면을 덮어준다면 수분의 증발을 억제시켜 떡이 말랑말랑한 느낌을 오래 유지할 수가 있다.  

  식품에서 수분의 역할은 미생물 성장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건조과정을 통해 물분자를 제거시켜 저장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만 물의 또 하나의 역할은 식품의 조직감(물성)에 영향을 주어 김이나 과자 같은 경우 바삭바삭한 물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찹쌀떡이나 인절미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조직감을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다. 이처럼 식품에 따른 특성으로 각기 다른 물성이 나타날 수 있다. 수분을 너무 많이 제거하면 분말로 구성된 녹말분자의 경우 입천장에 달라붙어 먹기 곤란하여 불편함을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쌀밥을 냉장고에 보관하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건조 되는데 이때 노화가 되면서 밥이 딱딱해 진다. 딱딱해진 밥은 최근에는 다이어트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물에 말아 불려서 수분이 충분히 스며들게 만들어 주어야 소화되기가 용이하다.  

  약식은 멥쌀밥에 비하여 시간이 지나도 딱딱하게 굳는 현상이 비교적 천천히 일어나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한 촉감을 느끼며 먹을 수 있다. 약식이 이처럼 말랑말랑한 이유는 약식을 만들 때 넣는 설탕 분자가 주변의 수분과 수소결합을 하여 멥쌀의 물분자가 증발되지 못하도록 수분을 잡아두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탕은 물분자 뿐 아니라 녹말분자들과도 수많은 수소결합을 하여 멥쌀의 수분들이 쉽게 증발되지 못한다. 이외에도 참기름을 살짝 처리하여 표면을 기름으로 코팅해 주면 수분의 증발을 막아줄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우주비행사들의 중간수분식품(intermediate moisture foods)은 우주에서 식사를 할 때 적절한 수분을 유지하면서 미생물의 성장이 억제되는 조건에서 공급되어 만족할만한 조직감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된 식품이다. 식품 제조 시, 건조도 매우 중요하지만 입안에서의 촉감 또한 꼭 고려해야할 물성이다.  

  약식 제조에 첨가되는 설탕 이외에도 자일리톨이나 에리스리톨과 같은 당알코올에 의해서도 이런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떡을 만들 때 당알코올을 사용하면 약식에 설탕을 넣는 것처럼 수분을 잡아주는 효과 뿐 아니라 칼로리를 낮춰 당뇨 환자들에게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찹쌀은 특유의 찰진 식감으로 멥쌀에 소량만 넣어 밥을 지어도 전체가 윤기가 나고 밥맛이 한결 좋아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처럼 찹쌀이 가진 쫀득한 식감을 잘 이용하면 찹쌀떡이나 떡, 약식, 전병 등 이외에도 다양한 식품들을 만들 수 있다. 실버푸드는 소화가 잘되고 목넘김이 잘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치아가 약한 고령자들을 위해 찹쌀떡과 같은 조직감을 잘 살려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한편 메밀묵은 단단한 듯 하면서도 씹으면 쉽게 쪼개지고 입천장에 달라붙지도 않고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갈 수 있어 찹쌀떡하고는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조화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찹쌀떡 만 팔지 않고 메밀묵과 함께 판매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출처 :  누들푸들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노봉수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