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몰

베이징 북쪽 외곽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명나라 장성을 등산하다

기원전에 살았던 사마천이 ‘사기(史記)’에서 ‘장성(長城)’을 언급한다. 초세가(楚世家)나 몽염열전(蒙恬列傳) 등에 기록돼 있는데 지금 장성과는 무관하다. ‘만리장성을 쌓았다’는 진시황은 이전 시대의 산성을 정비한 수준이다. 흉노족 침공에 대비해 산성을 쌓긴 했어도 ‘만리’라는 말은 지나친 왜곡이다. 아무리 시황제라 해도 통일 군주로 10여 년을 집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산해관에서 가욕관까지 만리에 이르는 장성이다. 명나라 시대에 200년에 걸쳐 크게 3번 국가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16세기 중반에 거의 20년에 걸쳐 항왜 영웅인 척계광(戚繼光) 장군이 지금의 골격을 완성했다. 수도 베이징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장성이 많다. 베이징에 살면서 틈만 나면 찾았다.  

<사진 1. 산해관 노룡두/가욕관 현벽판/노룡두의 척계광 장군 동상(위 왼쪽/가운데/오른쪽), 

베이징 장성 지도(아래)>

발해만의 산해관에서 시작한 장성은 허베이를 거쳐 베이징 북쪽을 지난다. 동쪽에 사마대와 금산령, 동남쪽에 장군관이 있다. 백령관, 모전욕, 전구, 향수호를 지나면 장성을 갈래를 짓는다. 삼거리에서 외성과 내성으로 나뉜다. 외성은 북쪽으로 이어지고 내성은 황화성을 지나 서쪽 관문인 거용관과 팔달령을 향한다. 서쪽으로 가면 장욕성과 황초량을 지나 베이징을 벗어난다. 베이징에 살 때 방문한 장성을 모으니 12군데다. 가파른 길이라 등산코스로도 유명하다.  

<사진 2. 금산령 입구/누각 위치도/공심적대(왼쪽 위/가운데/아래), 

전경/권문에서 본 장성(오른쪽 위/아래)>

베이징 동쪽 끝에 금산령(金山嶺)이 있다. 명나라 초기인 1368년에 처음 건설했고 200년 후 척 장군이 보완했다. 기존 망루를 발전시켜 공심적대(空心敵臺)를 건축했다. 직사각형 모양의 건축물이 나타난다. 말을 비롯해 10여 명의 군인이 상주할 수 있다. 적의 동태를 감시하거나 활을 쏠 수 있는 전창(箭窗)과 빗물 배수구를 만들어 방어 기능을 강화했다. 전 구간에 걸쳐 무려 1,017개를 만들었다. 금산령 구간은 1.3km다. 노선도를 따라 망루와 적대를 따라 동쪽과 서쪽을 왕복한다. 끝도 없이 흘러가는 장성의 전경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대 입구인 권문(券門)에서 바라보는 맛도 색다르다.  

<사진 3. 백령관 능선/사과배(위 왼쪽/오른쪽), 

백령관 전경/장성 벽돌로 만든 창고(아래 왼쪽/오른쪽)>

신청쯔(新城子) 마을 뒷산으로 장성이 지나간다. 백령관(白嶺關) 자락인데 개발을 하지 않아 험난한 편이다. 마을을 지나 능선을 바라보니 윤곽이 보인다. 보기에는 가까운데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야 한다. 바닥에 사과가 떨어져 있다. 나무에 걸린 열매를 하나 따서 먹었는데 맛이 독특하다. 핑궈리(苹果梨)다. 사과와 배를 접붙여 재배한 과일이다. 반반 섞였는데 물기 많은 사과와 비슷하다. 20세기 초 북한 땅에서 처음 재배에 성공했고 중국으로 넘어왔다. 무너진 장성 벽돌을 빼서 만든 듯한 창고가 있다. 망루에 오르니 무성하게 자란 풀이 그대로 남아있다. 꼬불꼬불 이어진 장성은 어디서 봐도 늘 멋지다.  

<사진 4. 전구 장성 정상/정상 절벽(위 왼쪽/오른쪽), 

응비도앙 구간/정상에서 본 장성 망루(아래 왼쪽/오른쪽)>

시자쯔(西栅子) 마을에 전구(箭扣) 장성이 있다. 활시위에 끼우도록 잘라 만든 화살 머리인 오늬처럼 생겼다는 작명이다. 엄청 가파르다는 말이다. 베이징 장성 중에 가장 힘든 등산로다. 장성 망루를 따라 풀과 나무가 자란 길을 오르락내리락 헤치고 간다. 정상 망루에서 절벽을 넘어오는 사람들과 만난다. 눈 아래로 까마득하게 장성이 펼쳐져 있고 멀리 망루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도 보인다. 조심스레 내려가니 경사도가 극심한 길이 나온다. 매도 날아가다가 나자빠진다는 응비도앙(鷹飛倒仰) 구간이다. 오금이 저려 공포에 떨며 엉금엉금 기어 내려간다. 이런 곳에도 벽돌을 쌓았으니 물 샐 틈 없는 공사라고 할만하다.  

<사진 5. 조씨산거 앞/피아노 구름/1식 3찬(왼쪽 위/가운데/아래), 

조씨산거/바위솔(오른쪽 위/아래)>

하산 후 조씨산거(趙氏山居)를 찾는다. 전구와 연관 검색어로 나올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며 숙소다. 영화 마니아가 많이 찾는 집이라는 간판도 붙었다. 우견장성(又見長城)이라 적은 담장 쪽으로 멀리 정상이 보인다. 날씨가 맑아 장성이 고스란히 보인다. 바람이 불어 어느새 구름이 나타나 피아노 건반을 연출하고 있다. 산골의 고기, 감자, 채소로 만든 3찬을 주문해 맨밥과 먹으니 꿀맛이다. 등산 후라 시장이 반찬이다. 지붕에 햇살을 머금고 곱게 자란 식물이 보인다. 주인에게 물으니 타화와쑹(塔花瓦松)이며 100년 이상 오래된 기와지붕 위에서 자란다고 자랑한다. 우리말로 바위솔이라 부르는데 암 수술 후 전이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 6. 향수호 장성/코앞에서 본 정상(왼쪽 위/아래),

계곡/계곡 라면 끓이기/라면(오른쪽 위/가운데/아래)>

전구와 가까운 거리에 향수호(响水湖) 장성이 있다. 시내에서 2시간 거리로 평소에 자주 찾던 곳이다. 지인이 만리장성을 보고 싶다면 여기를 데려간다. 정상까지 오르기 쉽고 별로 알려지지 않아 한적한 편이다. 게다가 장성 바로 아래에 물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 차에서 내려서 30분이면 오른다. 장성이 유(U) 자로 휘돌아가니 반대쪽 장성의 동선을 바라보는 감상도 좋다.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코앞에서 장성의 진면목을 관람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장성에서 충분히 즐긴 후 계곡으로 내려와 발 담그고 놀아도 좋다. 그늘도 충분하다.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있다. 베이징에는 한국 마트도 많다. 만리장성에서 라면 먹고 놀았다면 믿겠는가?  

<사진 7. 장욕성 등산/등산/망루(왼쪽 위/가운데/아래), 

원형 망루/장성 원경(오른쪽 위/아래)>

가장 기억에 남는 장성 등산을 꼽으라면 단연 장욕성(長峪城)이다. 베이징 장성 중 해발 1,439m로 가장 높다. 중턱까지 도로가 있어 접근이 어렵지 않다. 맑은 가을 하늘, 갈대가 휘날리는 날을 잡으면 꽤 인상적인 등산을 할 수 있다. 약 1시간가량 완만한 길을 오르면 망루가 나타난다. 망루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니 무너진 원형 망루가 보인다. 만리에 이르는 장성에서 아주 드물게 나타난다. 망루는 사각형만이 아니었다. 서쪽으로 용이 지나는 듯 길게 이어진 장성이 한눈에 보인다. 베이징을 벗어난 장성은 서쪽 가욕관까지 기나긴 ‘만리’ 유람을 한다.  

🔊 출처 :  누들푸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가, 작가 및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