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몰

13세기 남송 시대 형성된 천년고진, 멋과 맛이 풍성한 명품 마을

뜻밖의 명품 마을을 만나면 여행 기분은 몇 배 상승한다. 저장 남부 첸퉁고진(前童古镇)이 그렇다. 상하이에서 고속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 45분, 싼먼현(三门县) 역에서 내린다. 북쪽으로 30km 떨어진 고진이다. 소박한 입구다. 안으로 들어서니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마이빙(麦饼)을 굽고 있다. 다른 지방보다 밀가루 반죽이 유난히 얇다. 밀대로 종이처럼 만든다. 새우와 파래를 넣는다. 불에 올리고도 누르고 눌러서 익힌다. 종이처럼 접어서 주는데 향긋하고 담백하다.  

<사진 1. 첸퉁고진 입구/첸퉁마이빙 좌판(왼쪽 위/아래), 마이빙 만드는 중(오른쪽)>

이다지 얇은 마이빙을 본 적이 없다. 특별한 사연이 있다. 명나라 중기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서하객(徐霞客)이 부근에 왔다. 마이빙이 두툼해 먹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씹기 좋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옛날이야기 붙이는데 솜씨 좋은 사람이 ‘샤커빙(霞客饼)’이라 불렀다. ‘한국의 서하객’이라며 주야장천 돌아다녔다. 서하객 행적은 물론이고 이렇게 ‘그의 맛’과 만나다니 횡재한 셈이다.  

<사진 2. 첸퉁고진/츠무초당 대문(왼쪽 위/아래), 

공자 소개 안내판/객잔 바닥(오른쪽 위/아래)>

2007년에 역사문화명진(历史文化名镇)에 선정된 마을이다. 자갈을 깔아 골목이 평탄하다. 13세기 남송 시대에 동씨(童氏) 일가가 이주한 집성촌이다. ‘천년 고진’이다. 공자 안내판이 있다. 명나라 초기에 유학자인 방효유(方孝孺)를 초청해 강의를 열었다. 서원을 세워 교육에 힘써 인재가 많이 배출됐다. 예로부터 ‘강남 제일의 유교 마을’로 소문이 자자했다. 공자 안내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객잔이 나타난다. 츠무초당(尺木草堂)이다. 조약돌로 사슴과 소나무를 꾸민 마당이 품위가 있다. 침실은 아주 훌륭해 5성급 호텔 수준이다. 자 척(尺)과 나무 목(木)이라니 특별한 뜻이 있어 보인다.  

<사진 3. 고진삼보/두부(위 왼쪽/오른쪽), 두부/두부 튀기는 중/공심두부(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짐을 풀고 골목을 나선다. 오밀조밀하게 휘돌아 만들어졌다. 처음 조성할 때 팔괘(八卦)에 맞췄다고 전해진다. 그냥 여러 갈래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진삼보(古镇三宝)라고 적혀 있는 가게가 보인다. 마을 전체가 ‘삼보’로 그득하다. 맛집인 지미정두부방(知味亭豆腐坊)을 찾았다. 보물 같은 요리 3가지가 아니라 두부 종류가 셋이다. 물컹한 전통 두부, 딱딱한 향간(香干), 겉을 튀기고 안은 부드러운 공심부(空心腐)다. 튀김 두부를 먹으니 바삭바삭하고 무덤덤한 맛이다.  

<사진 4. 첸퉁고진 도랑/도랑 물고기(위 왼쪽/오른쪽), 

도랑/골목/계탐도 벽화(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도랑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릇이나 재료 씻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골목처럼 팔괘 형상으로 물길을 만들었다. 골고루 흐르고 함께 나누도록 설계했다. 풍수지리에 집착하는 중국인은 물이 곧 복이라는 관념에 투철하다. 돌다리도 수없이 많다. 골목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담벼락과 잇댄 다리도 있다. 골목도 넓기도, 좁기도 하다. 두 사람 마주 보면 부딪힐 정도인 골목을 지난다. 벽마다 여러 문양을 새겨 놓고 있다. 눈을 사로잡는 벽화가 있다. 공자 후손이 사는 저택에도 있는 계탐도(戒贪图)다. 신화에 등장하는 괴수인 탐을 경계하라는 그림이다. 욕심이 끝없어 온 세상 보물을 독점하고도 모자라 태양조차 삼키려 했다.  

<사진 5. 동씨종사/종사 삼성신/택사거 삼성신(왼쪽 위/가운데/아래), 

영모당/택사거 목조(오른쪽 위/아래)>

동씨종사(童氏宗祠)가 보인다. 초청받은 유학자 방효유가 설계를 도왔다. 제사를 지내고 집회나 축제를 연 공간이기도 하다. 신위가 보존된 영모당(永慕堂)에 시례명종(诗礼名宗)이 금빛 찬란하다. 유교의 “시경”과 “예기”를 숭상하는 조종(祖宗)이라는 극찬이다. 지붕에 두 마리 용과 삼성신(三星神) 조각이 인상적이다. 복록수(福禄寿)를 상징한다. 태양인 듯 빨간 등을 달았는데 어울리는 듯 그렇지 않은 듯 헷갈린다. 명청 시대 저택이 수두룩하다. 목조 예술의 전시장이라 일컫는 택사거(泽思居)가 유명하다. 들보와 기둥에 새긴 문양이 볼수록 예술이다.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청나라 중기에 성(省) 단위 과거를 거친 수재(秀才)를 셋이나 배출한 집안이다. 지붕 위에 새긴 삼성신은 사당에 비해 화려하지 않고 단아하다.  

<사진 6. 첸퉁고진 라오제의 유지산>

아마도 가장 오래된 길이지 싶은 라오제(老街)가 길게 이어진다. 식당과 카페, 공예품 가게가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혼잡하지 않고 한가롭다. 곳곳에 유지산(油纸伞)이 잔뜩 달려 있다. 오색찬란하고 알록달록, 여러 색깔이 섞여 영롱한 빛을 뿜어낸다. 골목으로 쏟아지는 햇볕도 막아준다. 비가 내렸던 흔적이 있어 반영된 우산이 너무 예뻐 한없이 바라보게 된다. 하늘 향해 고개 드니 양쪽 지붕 사이로 또렷이 걸린 우산이 방긋 웃는 듯하다.  

<사진 7. 지미정두부방(왼쪽), 두부/생선요리/새우 국수(오른쪽 위/가운데/아래)>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점심 먹은 식당인 지미정두부방을 다시 찾았다. 입구 오른쪽에 적은 한삼걸문향하마(汉三杰闻香下马)가 아른거렸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삼걸은 무장 한신, 책사 장량, 승상 소하다. 이들 셋이 맛이 너무 좋아 말에서 내려 찾았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왼쪽에는 주팔사지미정차(周八士知味停车)가 대련을 이루고 있다. ‘논어’에 주나라 시대 8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도 맛을 알고 가던 길을 멈췄다. 멈출 정(停)과 발음이 같은 지미정(知味亭)이다. 다시 두부 맛을 즐긴다. 술시에 맞게 안주도 주문한다. 훙샤오짜위(红烧杂鱼)는 잡어를 간장으로 볶은 요리다. 큼지막한 새우가 서너 마리 들어간 국수로 곁들인다.  

<사진 8. 첸퉁고진 밤/조명 밝힌 고진(왼쪽 위/가운데/아래), 

츠무초당 야경/츠무초당 담장(오른쪽 위/아래)>

어두워졌다. 조명을 밝히니 이동이 쉽다. 갑자기 도랑에도 조명이 켜진다. 새파랗게 변모한 도랑 때문에 걸음을 멈춘다. 물이 본디 파란색이었던지 낯설다. 가끔 보이는 홍등도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은은한 에메랄드 같은 물길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흔하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고 술기운까지 돋우니 밤새 거닐고 싶다.  

츠무초당도 조명으로 담장을 수놓고 있다. 파랗고 보랏빛이더니 초록으로 후다닥 변한다. 전통 가옥을 리모델링했다. 정원과 침실 모두 너무 마음에 든다. 담장 따라 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동한 시대 왕충(王充)은 “논형(论衡)”에서 ‘용무척목(龙无尺木), 무이승천(无以升天)’이라 했다. 신비한 나무가 객잔 이름이다. ‘용은 척목이 없으면 승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유학을 숭상한 첸퉁고진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승승장구하는 관리가 돼라’는 뜻이리라. 기분은 이미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 출처 :  누들푸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가, 작가 및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