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몰

  최근 고기리 막국수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고기리막국수를 대표하는 들기름 막국수 덕에 비벼먹는 국수와 막국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기리 막국수는 영동 지역의 막국수 문화와 연결 되어있다. 고기리 막국수의 들기름 막국수는 면 위에 간장과 김, 들깨, 들기름이 뿌려진 형태로 나온다. 그런데 이 막국수는 비벼 먹는 게 아니다. 떠서 먹는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면의 감칠맛을 극대화시키는 김 가루 때문이다. 원조 밥도둑으로 통하는 김의 단점은 입이나 면에 붙는다는 점이다. 들기름막국수를 비비면 김이 면에 눌러 붙어 면 고유의 탄력 있고 부드러운 식감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들기름막국수가 나올 때 종업원들은 들기름막국수 먹는 법으로 비비지 말 것과 2/3를 먹은 뒤 육수를 부어 먹으라 권한다. 중간에 육수를 붓는 이유는 면의 탄력이 떨어질 때쯤 찬 육수를 부으면 면의 온도가 떨어지면서 면의 탄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진 1. 고기리 막국수의 ‘들기름 막국수’와 ‘물 막국수’>

  고기리의 면은 정교하고 섬세하다. 면의 두께는 1.3mm로 가늘지만 탄력이 강하다. 좋은 면을 위해 메밀의 도정은 일주일에 한번 한다. 이런 메밀을 5도의 저온 저장고에 보관하고 1주일 이내에 다 소진한다. 이를 10kg씩 소량으로 식당의 제분기에서 제분한다. 빨리 삭는 메밀의 단점을 최소화 하기 위한 작업들이다. 들기름은 기름 명가로 유명한 옛간의 들기름을 사용한다. 기존의 동네 방앗간이 배전을 많이 해 색과 향이 강한 것과는 달리 찜 누름 방식으로 짜낸 들기름은 색과 맛이 연하지만 은근하고 깊은 맛이 난다. 간장은 샘표 501 양조 간장을 사용한다. 김과 함께 올라가는 깨는 반은 갈아 향을 내고 반은 형태를 지녀 맛과 식감을 준다. 이런 부 재료들을 메밀면 위아래에서 배치해 먹는 방식이다. 들기름막국수에 곁들여 나오는 김치도 들기름막국수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싱겁게 느낄 정도의 백김치를 낸다. 막국수란 이름과는 달리 세련되고 섬세한 음식이다.  

들기름 막국수의 탄생과 영동의 막국수 문화

  들기름 막국수는 두 창업자 부부의 영동 지역의 막국수 식당 순례 중에 이루어졌다. 영동지방에는 들기름을 간장이나 식초와 함께 탁자에 두는 식당들이 많다. 국수는 맛있는데 양념이나 간이 잘 안 맞는 경우에 들기름을 부으면 맛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 2. 강릉 삼교리 동치미 막국수>

  강원도의 막국수는 화전민들 밤참의 주인공이었다. 겨울 밤이면 한 달에 한 두 번 마을 주민이 모여 ‘메밀을 얼마씩 모아 그것을 방아체 찧어 가루를 만든다. 그 메밀 가루로 국수를 누른다. 그러면 지금의 막국수가 된다. 동치미국물이나 아니면 기름에 비빈다.’ (1981년 1월 13일자, 매일경제신문) 이 기사는 영동지역 양양의 화전민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에 기름에 비비는 비빔막국수가 등장한다. 반면에 영서 지역의 막국수는 들기름을 넣지 않고 ‘고춧가루, 겨자, 식초 등을 쳐서 거기다 육수를 부어 비비면 시원하고도 새콤한 맛이 난다.’(1977년 12월 10일자, 경향신문)는 것이었다. 영동의 전통적인 비빔 기름 막국수를 정교하게 만들어 고기리 막국수는 주말이면 2,000 그릇 이상의 막국수를 팔고 있다.  

막국수와 냉면은 같은 음식일까 다른 음식일까.

  냉면은 ‘냉면국’이라 불리던 평안도에서는 국수로 불렀다. 국수는 메밀로 만든다는 점에서 막국수와 같지만 겉껍질을 사용한 것은 막국수, 속만 사용한 것은 국수 혹은 냉면으로 불렸다. 게다가 소비하는 사람들도 달랐다. 막국수에 관한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기록은 1924년 8월 28일자 <조선일보> ‘평양의 빈한굴과 기(그)생활’에 ‘빈민의 식료품’이다.  

 ‘빈민의 별제요리 막국수 원료는 메밀까지인데 일시일인전사전(一人 四錢) 이내외다. 맛이야말로 여러분의 추측하실 바이지만은 원래 검은 깍지(껍질)니까 빗이야말노 괴괴합니다.’  

  막국수는 메밀을 껍질째 갈아 색깔이 검어 괴이스럽고 싸구려 음식으로 서민들의 음식이 아닌 빈민들이 먹던 거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막국수는 평양 시외 기림리와 서성리의 빈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 식복 터진 날이라야 먹는 음식(1926년 12월 28일자, 조선일보)이었다. 하지만 막국수는 검은 색 때문에 ‘흑면(黑麵)'으로 불렀지만 평양냉면의 하나였다. (1934년 7월 13일자, 매일신보) 평양 지역의 막국수의 ‘막’자는 마구 만든 음식의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강원도 지역의 막국수의 막은 마구란 의미에 ‘방금’ 만든 의미가 더해진다. 하지만 냉면이나 막국수의 주류는 물에 말아 먹는 것이다. 비빔면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 월내조에 “메밀국수에 잡채,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참기름, 간장 등을 넣어 섞은 것을 골동면이라 한다. 생각건대 나부영(羅浮潁)이라는 노인이 여러 가지 식품을 섞어서 만든 갱(羹)을 골동갱이라 하였는데 골동이란 뒤섞는다는 뜻이다. 지금의 잡면은 이러한 것이다.”라고 처음 나오지만 기록이 드문 편이다.  

 막국수 면발은 메밀의 상태, 도정과 제분, 날씨, 물의 상태, 반죽하는 사람의 기술 등 많은 변수들이 결합돼 만들어진다. 고기리 막국수는 이런 변수들을 계량화해 영동 화전민의 투박한 음식을 세련되고 섬세한 음식으로 만들었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단단한 면발과 국물 없는 면의 선호가 엿보인다. 울릉의 골동면이나 고기리막국수의 들기름막국수 같은 비벼먹는 면의 인기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출처 :  누들푸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