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몰

화교 상인이 고향에 돌아와 세운 카이핑 조루 자력촌과 입원

중국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유산이 몇 곳이나 될까? 2021년에 7월에 하나가 추가돼 모두 56곳이다. 전 세계 1등이다. 장성과 병마용처럼 잘 알려진 유적도 있지만 처음 듣거나 낯선 곳도 꽤 많다. 2007년에 등재된 카이핑(开平) 조루(碉楼)가 그렇다. 직항 타고 광저우 공항에 내려 서남쪽 방향으로 약 2시간 걸린다. 카이핑 시 서쪽 외곽에 위치한 자력촌(自力村)으로 간다. 안으로 들어서니 아담한 카페 ‘가(家)+가(咖)’가 있다. 집에 커피를 더했다는 뜻이다.  

<사진 1. 자력촌 카페/커피/연못(왼쪽 위/가운데/아래), 

잠려/세계문화유산 표지석(오른쪽 위/아래)>

카페에 앉아 창문으로 연못을 바라본다. 물이 맑아 하늘이 더욱 푸르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예쁜 공간이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고 연못 옆 잔도를 따라 조루로 들어선다. 조루는 원래 방어용 망루를 뜻한다. 그래서 대체로 높은 주거공간이다. 지대가 낮아 생기는 홍수로부터 안전한 편이다. 카이핑 조루는 명나라 말기에 처음 생겼다고 알려졌다. 20세기 전후 해외 화교들이 귀향해 건축하기 시작했다. 꼭대기에 잠려(湛庐)라 쓴 집이 나타난다. 1948년에 지었으니 다른 조루에 비해 아주 늦었다. 세계문화유산 표지석이 나온다.  

<사진 2. 엽생거려/민가 대문/라러우(위 왼쪽/가운데/오른쪽), 

오리 라러우/생선 라러우(아래 왼쪽/오른쪽)>

평지에 느닷없이 고층 건물이 있으니 낯설다. 날씨가 쾌청한 덕분에 연못에 반영된 조루가 예쁘다. 엽생거려(叶生居庐)다. 홍콩 화교 상인인 팡광콴(方广宽)이 지었다. 주변에 관생거려(官生居庐)와 난생거려(澜生居庐)도 있다. 삼 형제가 나란히 살았다. 팡광콴이 항일전쟁 시기 홍콩을 다녀오다가 비적에 잡혀 사망했다.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반세기가 지난 2006년에야 먼지를 털어내고 지금 모습으로 공개됐다. 주변 광장 주위에 있는 집마다 독특한 문양과 조각이 이국적이다. 대문 위에 봉황과 함께 뿔이 하나인 녹단(甪端)이 있다. 색감도 그렇지만 조각이 정교해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햇살에 건조되고 있는 오리는 더 생경하다. 생선도 걸려 있다. 음력 섣달부터 말린다는 라러우(腊肉)다. 겨우내 육해공 모두 에누리 없이 건조한다. 염장이 돼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채소와 버섯 등을 함께 넣고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다.  

<사진 3. 난생거려/부뚜막과 신위(왼쪽 위/아래), 사진 액자/조상 신위(오른쪽 위/아래)>

골목 사이로 들어서니 난생거려가 나온다. 형제 중 팡광인(方广寅)이 1936년에 지은 3층 건물이다. 주방 부뚜막 옆에 조군(灶君)과 문관(门官) 신위가 있어 놀랐다. 부뚜막과 문을 보호하고 관장하는 신을 봉공하는 공간이다. 거실에는 당시 사용하던 생활 도구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벽에 걸린 사진 액자를 보니 고향 생각이 나서 정겹다. 3층에는 조상 신위를 모신 감실이 있는데 도금으로 치장해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다. 태양을 중심으로 신화 속에 등장하는 기린과 봉황이 생생하다. 꽃과 구름, 나무와 새도 세밀하게 묘사했다. 조상에 대한 신앙이 강렬한 중국인이다. 남방 사람들은 더 그렇다.  

<사진 4. 명석루 침실/논밭 옆 운환루(위 왼쪽/오른쪽), 

양자탄비 촬영지/거안루/죽림루(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자력촌에는 모두 15개의 조루가 있다. 중심에 명석루(铭石楼)가 위치한다. 1925년에 건축됐는데 조루 대부분 그렇지만 서양과 중국 양식이 결합된 모양이다. 4층 건물로 층마다 주방과 거실, 서재와 침실의 위치와 구조가 똑같다. 4층 침실이 가장이 살았기에 생활 도구나 침대가 훨씬 고가로 전시된 모습이다. 2010년에 장원 감독의 영화로 주윤발이 출연한 ‘양자탄비(让子弹飞)’를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당연히 포스터를 걸어두고 있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농촌 풍광이 익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논밭 사이에 5층 높이의 운환루(云幻楼)가 보인다. 거안루(居安楼)도 사람 모습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대문이 따로 있는 조루인 죽림루(竹林楼)가 있다. 담장에 알록달록하게 꽃이 피어나 정겹다.  

<

카이핑에 조루가 있는 마을이 여러 곳이다. 자력촌에서 입원(立园)으로 간다. 한꺼번에 관람하는 통표(通票)를 사면 두 곳을 잇는 무료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입구 옆 식당으로 들어가 요기를 한다. 북적거리는 식당에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음식을 먹고 있다. ‘사람들이 먹고 있는 저 밥’을 달라고 주문하고 차림표를 봤다. 파 썰어 넣은 계란 전인 젠단빙(煎蛋饼)이 보인다. 두부를 살짝 튀겨 간장과 함께 나온 차오더우쟈오(炒豆角)는 반찬으로 먹을 요량이다. 황산쥐판(黄鳝焗饭)이 나왔다. 쥐판은 쪄서 만든 밥이다. 가늘게 생긴 황산이 별미다. 드렁허리라는 민물고기로 장어와 비슷하다. 남방식 ‘장어 찜밥’이 보기에 약간 징그러워 보이는데 간장에 비비니 향긋하다. 허겁지겁 먹었다. 48위안(약 8천 원)이니 비싼 편이다.  

<사진 6. 반입루/반문루(왼쪽 위/아래), 

생활 도구/삼고초려 벽화/본입도생 패방(오른쪽 위/가운데/아래)>

입원은 1936년 미국 화교 세웨이리(谢维立)가 세웠다. 여러 개의 조루와 정원, 도랑과 정자로 조성됐으며 총면적이 11,000m2가 넘는다. 먼저 반입루(泮立楼)가 나온다. 뒤에는 종형(宗兄)인 세웨이원(谢维文)이 거주한 반문루(泮文楼)가 있다. 두 건물은 건축 양식이나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작명은 이름을 따서 만들었고 반(泮)은 공자 사당 앞 연못을 뜻한다. 당시 사용하던 물건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벽화가 많은데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그린 삼고초려 장면이 인상 깊다. 중국 상인은 그냥 장사치가 아니었다. 거상일수록 역사문화에 조예가 깊다. 본입도생(本立道生) 패방에도 잘 드러난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공자 사상을 인용해 포부를 담고 있다. 

<사진 7. 입원 도랑/육배 별장(위 왼쪽/오른쪽), 

석자탑/입원 전경(아래 왼쪽/오른쪽)>

강남 수향 분위기를 닮은 도랑이 흐르고 있다. 군데군데 정자가 있어 쉬거나 책 읽기 좋다. 도랑 끝에 별장이 하나 있다. 양육하고 배양한다는 육배(毓培)다. 건물 2층 침실에서 창문을 열면 도랑이 흐르는 정원 풍광이 펼쳐진다. 부부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금슬이 좋아 보인다. 도랑 따라 출구로 가는 길에 자그마한 탑 하나가 눈길을 끈다. 글자를 소중히 여긴다는 뜻의 석자탑(惜字塔)이다. 문자는 신성한 것이라 함부로 버릴 수 없어 경건한 마음으로 태웠다. 연못에 비친 입원의 전경이 보인다. 화교 상인은 고향에 돌아와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았다. 나이가 들면 태어난 곳으로 가고픈 낙엽귀근(落叶归根)의 마음이다. 카이핑 조루 여행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다.  

🔊 출처 :  누들푸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가, 작가 및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