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몰

  2022년 4월 자가격리 없이 한국과 베트남의 입국이 허가되었다. 

4월 25일부터 5월 7일까지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치민을 다녀왔다. 베트남 국수집을 40여군데 돌아본 기록을 2회에 걸쳐 싣는다.  

<사진 1. 하노이의 도로 표지판형 식당 안내판>

 하노이는 퍼(phở)의 도시이자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아침 6시면 문을 열고 9시경이면 문을 닫는 식당이 많다. 날이 덥고 오랜 농경의 역사가 축적된 흔적이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이자 홍강 삼각주의 중심 도시이다. 하노이란 말은 "강이 많다"(Hà Nội, 河內, 하내)는 뜻이다. 중국과 가까워 중국의 음식 영향도 많이 받았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쪽의 음식 문화는 재료의 맛을 살리는 순수한 맛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하노이도 경제 성장 덕에 마천루가 들어선 신도심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옛모습을 간직한 호안키엠 지역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유명한 쌀국수 식당도 거의 이곳에 몰려 있다. 아침 7시 호텔을 나서자 마자 길가에 베트남 쌀국수인 퍼를 파는 노점에 손님들이 가득하다. 길거리에 퍼 가게의 안내판이 곳곳에 도로표지처럼 걸려있다.  

<사진 2. 럼퍼보의 퍼보>

 럼퍼보(lâm Phở bò)에서 처음으로 퍼를 먹었다. 담백하고 달달하고 맑은 국물에 부드럽고 얇은 면발이 잘 어울린다. 국수 위로 소고기 수육과 양파, 쪽파가 올려져 있다. 국물을 마셔보면 우리나라 소고기 국수보다 단맛이 강하다. 고기 뼈로 맛을 낸다지만 설탕을 넣은 것이다.  

<사진 3. 노점의 퍼 모습과 퍼의 필수 소스 라임>

 퍼를 먹을 때 꼭 넣어야 하는 것들이 작은 탁자에 놓여있다. 어느 식당을 가도 반드시 나오는 칼라만시(Kalamansi, 라임 종류), 생선으로 만든 액젓인 느억맘(nước mắm)과 칠리소스, 식초에 생마늘을 편으로 썰어 놓은 소스다. 기름진 고기국물에 칼리만시를 짜서 즙을 넣으면 국물은 여름날 내리는 소낙비처럼 신선한 향이 올라온다. 그런데 우리가 베트남 쌀국수 하면 떠올리는 숙주가 없다. 하노이의 쌀국수집에서는 숙주를 넣어 먹지 않는다. 재배가 잘 안되는 환경이 나은 문화다. 숙주는 남부 쌀국수의 변형된 문화다. 북쪽을 대표하는 야채는 쪽파다. 쪽파를 줄기 그대로 넣거나 잘게 다녀 넣는다. 개운하고 톡 쏘는 향과 열에 닿으면 단맛이 나는 성분 때문에 사용한다.  

 노점형 퍼 식당은 소꿉 장난 같은 아주 작은 탁자에서 퍼를 먹는다. 우리가 흔히 쌀국수라 부르는 퍼(Phở)는 파쇄된 쌀가루를 물에 묽게 반죽하여 얇게 펴서 찐 다음에 썬다. 우리의 국수 사리에 해당하는 이것을 베트남어로 반퍼(Bánh phở)라 한다. 반퍼를 소고기(bò) 육수에 넣어 먹으면 퍼보(Phở bò), 닭고기(gà) 국물에 말아 내면 퍼가(Phở gà)가 된다. 베트남에는 쌀을 가공한 국수는 반죽을 썰어 내는 퍼와 우리의 냉면처럼 틀에 구멍을 뚫고 눌러서 국수발을 내리는 분(bún)이 있다.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 분짜(bún chả)가 한국에도 알려졌지만 분을 이용한 국수는 다양하게 있다.  

<사진 4. 하노이의 퍼 씬>

 하노이는 퍼보의 본향 답게 퍼의 명가들이 많다. 그 중에 퍼 씬(Phở THIN)을 빼 놓을 수 없다. 현재 두 군데가 원조 경쟁을 하고 있지만 로독 13번가(13 Lo Duc) 퍼씬이 더 유명하다. 입구에서 육수를 끓이고 꾸미를 잘라 국수와 함께 말아낸다. 주방 한켠에 창업자 얼굴 그림과 함께 1979년에 시작했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쌀국수는 한 그릇에 7만동(한화 4,000원)이다. 대개 노점 식당은 2천원에서 3천원 정도를 받는다. 하노이의 다른 식당과 달리 이 집의 국물은 진하고 기름지다. 서울의 곰탕 명가 ‘하동관’의 국물과 엇비슷하다. 베트남 쪽파와 꾸미가 국물 전체를 덮고 있다. 깊고 기름지고 달달한 국물이 안동국시 면발처럼 하늘거리는 반퍼에 스며들어 아침의 공복을 채워준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은 베트남 바게트 반미나 퍼로 속을 채운다.  

 퍼는 북부에서 기원한 음식이다. 그래서 북부의 중심지 하노이를 발상지로 여기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하노이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 떨어진 남딘을 퍼의 상업적 기원지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남딘은 프랑스 식민지 당시 섬유공장이 몰려있던 곳이었다. 농사에 쓰는 소를 잘 먹지 않던 베트남 사람들은 19세기 프랑스가 지배하면서 프랑스인들이 먹고 남은 소의 부산물이나 잘 먹지 않는 부위로 소고기 국물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남딘 근처의 마을에서 먹던 음식을 남딘의 노동자들이 소비하면서 대중화되었다. 남딘 사람들이 하노이에 퍼 식당을 개설하면서 하노이에 상업적 퍼가 정착한 것으로 여긴다.  

<사진 5. 남딘의 퍼 단>

 남딘은 작은 도시다. 남딘의 퍼 단(Phở DAN)을 8시 40분쯤 찾았다. 파장 분위기다. 새벽이 가장 붐빈다. 하노이와 달리 남딘의 퍼보 가격은 3만동(1600원) 정도로 절반 가격이다. 퍼단의 국물은 진하고 기름기가 많고 국물이 맑다. 주문할 때 국물을 보(소고기)로 할지 가(닭고기)로 할지 묻는다. 꾸미는 주문과 동시에 그자리에서 얇게 썰어준다. 면이 기스면처럼 얇고 부드럽다. 베트남에서는 남딘 스타일의 퍼를 구별한다.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면이 얇고 부드럽고 느억맘(생선 간장)을 사용해 단맛이 난다는 것이다.  

<사진 6. 남딘의 퍼 타오>

 남딘의 또다른 퍼 전문점 퍼 타오((Phở DAO)는 국물에 느억맘을 넣어 약간 갈색이 돈다. 깊고 깔끔하고 순수한 국물에 하늘거리는 면발은 황순원 소설 <소나기>의 소년 소녀처럼 순수하고 재료에 충실하다. 하노이 호안끼엠에는 베트남 최고의 긴 줄을 자랑하는 퍼 전문점 받단(Bát Đàn)이 있다. 아침부터 줄이 길다. 입구에서 음식을 시키고 계산하면 퍼가 나온다. 이것을 들고 빈 자리에 앉는다. 입구에서 아주머니가 한석봉 어머니처럼 고기를 능숙하게 썰고 남자는 면과 국물을 담아낸다. 국물이 달고 개운하고 따듯하다. 가늘고 좁은 면발은 부드럽다. 그런데 베트남 퍼 식당에 다 있는 라임이 없다. 국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 하노이 퍼 전문점 

  1. Pho Bat Dan  

  2. Pho Thin  

  3. Pho Ly Quoc Su  

  4. Pho Vui  

  5. Pho Suong  

  6. Pho Nho  

🔊 출처 :  누들푸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